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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Photo Diary

하얀목련에 대한 단상

by 김귀자 2017. 4. 2.

초임지를 제외하고는 교직생활의 대부분을 고등학교에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계절의 변화조차도 가슴으로 느낄 시간 없이 쫒기며 살아가는 고교생들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힐링의 음악시간을 꾸려나가야 할 것인가가 나의 최대 고민이다. 추위 속에 봄이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던 중 제자로부터 하얀 목련 사진이 담긴 카톡 메세지가 날아왔다.

하얀목련이 필 때면 선생님이 생각이 저절로 나는군요.”


해마다 이맘쯤이면 내가 근무했었던 여러 학교 제자들로부터 비슷한 문자가 날아온다.

나와 만났던 학생들은 대부분 하얀 목련에 대한 공통된 기억들이 있다. 3월의 첫 수업시간이 되면 신입생들에게 어김없이 교가와 함께 하얀 목련 가르치기가 시작되었으니당연한일이 아닌가! 그것이 언제부터였을까!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밝았던 얼굴들은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고  방학조차도 부족한 과목들을 보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이들에겐 학창시절의 낭만이란 그림의 떡에 가까웠다.

 

나역시 계절 바뀌는 것도 모른 채 동동거리며 학교생활을 하던 어느 봄날, 음악실 창문을 여니 창밖엔 하얀 목련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어느새 봄이 온 것이었다. 나도 몰랐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아이들도 계절이 바뀌어 새 옷을 갈아입은 이 봄이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까!

 

그날 음악시간 나는 아이들에게 노트와 펜을 꺼내라고 했다. 그리고 불러주는 가사를 적으라고 했다.

"제목은  하얀목련,  자 이제부터 가사를 불러줄게.

하얀목련이 필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여기저기에서 "크"하며 키득 키득대기 시작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표정과 손동작으로 느낌을 실어 가사를 실감나게 불러주었다.  의외의 가사가 재미있었는지 연신 웃으면서도 웃음을 참아가며 열심히 받아적고있다

 , 다 적었지? 그럼 이제 모두 따라 해봐.” 나는 가사의 주인공이다.”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한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먼저 가사속 주인공의 심정과 배경을 떠올려보는거야. 하얀목련이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이번에는 가사의 내용을 노래로 연기해보는 거야.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하며 내가 최선을 다해 가사 속에서 벌어지는 슬픔-행복-보내는 마음의 상황들마다 표정연기와 노래로 연출하니 아이들은 웃기도 하지만 곧 감상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자, 이제 너희 차례야. 내가 반주할테니 너희만의 하얀목련을 불러봐."

반주를 시작하자 아이들은 가사를 생각하며 자신만의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책에도 안 나오는 이 노래를 왜 부르느냐고 묻는다.

얘들아, 고개를 들어 오른쪽 창 밖을 봐. 무엇이 보이니?

"목련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지금 하얀 목련이 피고 있잖아.”

 

솔직히 난 이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가사에 대한 추억도 없고. 하지만 하얀목련을 통해 아이들에게 교과서=공부라는 공식에서 벗어난 일탈의 기쁨과 더불어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사와 생각이 분리된 채 노래하는 아이들에게 가사를 노래로 풀어내는 법을 이 곡을 통해 좀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때부터 시작된 하얀 목련 가르치기는 어느 새 파블로프의 조건반사가 되어버린 것같다. 언젠가 봄이되어 하얀 목련을 보게되면 음악실에서 고교시절 함께했었던 친구들과 내가 떠오르게 될 테니까.

그런 덕분에 봄이 되면 반가운 제자들로부터 하나 둘 소식을 받게 된다. 잊혀 지지 않는 교사가 된다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다.

개량한복을 입고다녔던 마산고등학교 교사시절 하얀목련 앞에서 아이들과 찍었던 빛바랜 사진 하나가 가슴으로 들어온다. 며칠전 인기그룹 '장미여관'의 드러머 경섭이가 고교시절 소풍에서 함께 찍었던 귀한 사진을 보내주었다. 물에 젖어버려 다른 한 친구의 얼굴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그 풋풋함에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교사는 영원한 피터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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