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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성공, 행복/감동실화,인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와 첼리스트

by 김귀자 2010.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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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

 


1992년의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던 사라예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사라예보는 몇 달째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의 위협 아래에 있었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언덕에 자리 잡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사살하던 세르비아계 저격수들 때문에 사라예보 시민들은 언덕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만을 찾아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식량과 물조차 구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1992년 5월 27일,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총을 피해 건물 사이로 움직이며 하루하루를 연명할 빵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한 빵가게에서 빵을 만들어 판다는 소식이 들렸고,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그 가게 앞에 줄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민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 왔습니다.

빵을 사서 그 동안 굶주리던 가족들과 나눌 생각으로 줄 서 있던 사람들에게 날아온 포탄은 그 자리에서 22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00여명의 부상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멀리 언덕 위에서 날아온 이 포탄은 총을 든 군인들과 그저 하루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에 서 있던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빵을 생각하며 또 하루를 넘길 희망에 부푼 사람들이 서 있던 거리는 순식간에 끊어진 팔다리와 흘러내린 피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가득한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러한 참상이 사라예보의 시민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죽고 다치는 사람들의 수에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는 일이었지요. 천만다행으로 오늘은 그 와중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지만 내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내일은 다른 거리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 이번에는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 있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로 나선 첼리스트

그런데 5월 27일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완전히 부서진 그 거리에 그 다음날 한 사람의 첼리스트가 찾아왔습니다.

비록 남루했지만 무대에 선 사람처럼 검은 연주복을 입고 큰 첼로 케이스와 연주용 의자를 들고 그 자리에 나타난 이 사람은 의자를 내려놓고 첼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어제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듯 느리고 장엄한, 그러면서도 애절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였지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lovic)라는 이 첼리스트는 전쟁 전까지 사라예보 필하모닉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쟁과 함께 음악 활동을 못 하게 된 스마일로비치는 사라예보의 다른 시민들처럼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빵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목숨을 잃은 그 사건을 접한 그는 전쟁의 비극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생각한 것은 22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억하며 22일 동안 첼로를 연주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언제 포탄이 또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표적을 찾아 헤매는 저격수들의 총구 앞에서 그는 매일 같이 22일 동안 그 자리에 나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했습니다.

사람들은 저격수들과 포탄의 위협을 피해 근처 건물 아래에 몸을 숨긴 채 그가 연주하는 <아다지오>를 들으며 슬픔을 달래고 또 평화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스마일로비치는 1993년 사라예보를 떠나 북아일랜드로 옮겨갈 때까지 사라예보의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또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광기에 직면한 인간 정신에 바치는 애도와 진혼의 찬가 <아다지오>

베트남전을 반대한 가수로 유명한 존 바에즈는 스마일로비치의 행동에 용기를 얻어 1993년 사라예보를 방문하고 시민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스마일로비치를 직접 만나기도 했지요. 그녀뿐만 아니라 영국의 작곡가인 데이비드 와일드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무반주 첼로곡을 작곡해 전쟁과 비극 그리고 평화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습니다. 1994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국제 첼로 페스티벌에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첼리스트라 할 수 있는 요요마가 그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당시 연주 현장에 있었던 폴 설리반이라는 피아니스트는 아래와 같이 전합니다.

"조용히,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 음악은 시작되었고, 웅성거리던 연주장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음악은 죽음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길한 메아리로 가득한 어둡고 텅 빈 우주를 만들어냈다. 음악은 서서히, 그러나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함치며 격렬한 열정으로 우리 모두는 사로잡았고, 마침내 죽음 직전의 공허한 마지막 한숨으로 변해갔다. 그러고는 다시 시작했던 그 순간처럼 고요함으로 돌아갔다.

연주를 끝내고도 요요마는 여전히 첼로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고, 활을 든 그의 손도 여전히 첼로에 놓여 있었다. 연주장에 있던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고, 오랫동안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소름끼치는 학살을 직접 목격한 듯 그렇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는 연주장에서 요요마가 마침내 의자에서 일어나 관객석을 바라보면서 손을 뻗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 요요마의 손길을 따라 모든 눈길이 모였고, 그 손길이 부르는 사람이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바로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청중들은 표현할 길 없는 충격을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마일로비치는 요요마가 있던 무대 쪽으로 걸어갔고 무대에서 내려온 요요마는 통로로 내려가 두 팔 벌려 스마일로비치를 껴안았다.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모두 일어났고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치며 귀가 먹먹할 정도로 환호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러한 감동의 한가운데에는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부드럽고 세련된 클래식 음악의 왕자로서 빈틈없는 연주와 외모를 보여주었던 요요마가 있었고, 그의 앞에는 사라예보에서 금방 빠져나와 여전히 얼룩투성이의 낡고 주름 진 가죽 점퍼를 입은 스마일로비치가 있었다. 그토록 많은 눈물에 젖고 고통과 상처에 지쳐 실제 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빗지 않은 긴 머리와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1993년에 사라예보를 떠난 스마일로비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국제적인 관심은 뒤로한 채 북 아일랜드의 조용한 시골에 묻혀 음악을 작곡하고 첼로를 연주하는 생활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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