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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class/성악곡 감상

전설의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

by 김귀자 20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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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칼라스 이야기  




마리아 칼라스 의 생애



이탈리아 사람들이 오페라의 성녀라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23년 12월 4일 미국 뉴욕의 맨하탄에서 그리스 출신의 부모밑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에 이민온 후 자신의 패밀리 네임인 '칼로게로풀로스'를 '칼라스'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고쳤다. 칼라스의 아버지는 약국을 경영하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머니 에반겔리아는 예술적 취향을 지니고 있어서 음악을 사랑했으며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했던 마리아에게 오페라 가수의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었다. 열세살이 될 무렵 칼라스의 부모는 이혼을 하고 에반겔리아는 두 딸을 데리고 모국인 그리스로 돌아온다.
 
38년 아테네 국립음악원에 입학한 그녀는 이달고를 스승으로 만난다. 한때 대가수이기도했던 이달고는 결코 예쁜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극적인 감흥이 풍부한 음색을 지닌 칼라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해 주었고, 그녀가 약점을 고쳐 소프라노 영역의 표현적이고 독특한 음색을 확장시키도록 이끌어준다. 칼라스는 '41년 아테네 오페라단의 정식단원으로 입단한다.


'45년 미국땅을 다시 밟은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 여러 오페라 극장문을 두드리지만 80kg이 넘는 거구의 그녀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47년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단의 음악감독 조반니 제니텔로(Giovanni Genatelo)의 초청으로 칼라스는 이탈리아에서 「라 지오콘다」를 공연, 대성공을 거둔다. 베로나에서 그녀는 당대의 대지휘자 툴리오 세라핀(Tulio Serafin)과 만난다.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의 재현에 심혈을 기울이던 그는 처음 칼라스를 '그란데 보찬자'라 불렀다고 한다. '소리는 큰데 못난 소리'라는 뜻이다.

세라핀은 그녀에게 '영혼으로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충실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그후 만나게 된 연출가 루키노 비스콘티는 그녀에게 연극적인 모든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 두사람의 스승을 만남으로 인해 오페라와 연극을 결합한 칼라스의 예술세계는 힘찬 도약의 날개를 펴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 만난 또 한사람의 중요한 음악적 동반자가 조바니 메네기니 였다.

부유한 사업가이자 오페라광이었던 메네기니는 그녀보다 23세나 연상이었으며. '49년 그들은 결혼하였고 칼라스의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후원자가 된다. 칼라스는 '51년 12월 스칼라에 데뷔한다. 당시 최고의 여가수였으며 이후 황금의 라이벌관계를 이루게 될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가 갑작스런 병으로 오페라 '아이다'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자 스칼라측은 칼라스를 대역으로 요청했다. 스칼라에 입성한 그녀는 이로부터 5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는 오페라 인생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영화 '로마의 휴일'은 오드리 햅번을 보고 '그만큼 날씬해지겠다'고 결심한 후 2년 사이 몸무게를 37kg이나 줄이는데 성공, 백조로 재탄생한 그녀는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전영역을 넘나들며 연주와 레코딩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테너 쥬세페 디 스테파노, 바리톤 티토 곱비,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 안토니오 보토 등과 콤비를 이루어 많은 음반을 남겼으며 스칼라를 비롯, 영국 코벤크 가든, 파리 오페라 극장, 미국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무대에서 명연을 펼친다.

그러나 한창 전성기 무렵 칼라스는 화려한 축하 파티에서 남편 메네기니와 함께 참석했다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만나고 남편 곁을 떠나게 된다. 오나시스와 함께 있는 동안의 화려한 생활 속에서 차츰 갈고 닦은 예술인으로서의 고귀한 열정은 힘을 잃어가게 된다. 아기를 유산하고 자살기도까지 할 정도로 황폐해진 그녀는 오나시스가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해 버리자 40대 초반의 나이에 예술도 사랑도 잃어버린 채 홀로 남게 되고 '65년 42세의 한창 나이에 코벤트 가든에서의 '토스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무대를 떠난 칼라스는 줄리어드에 나가 마스터클래스를 열기도 했으며 영화에도 출연했다. 전성기 때의 콤비 쥬세페 디 스테파노와 함께 '73 '74년 전세계 콘서트 투어를 가지기도 했으나, 이미 한번 시든 칼라스의 예술은 다시 피지 못한 채 순회연주 이후 파리의 한 저택에서 칩거 생활에 들어간다. 고독한 오랜 생활 끝에 그녀는 '77년 9월, 54세의 길지 않은 나이에 우울증과 수면제 과다복용이 원인이 되어 심장마비로 극적인 생애를 마감한다.

오페라 연출가 프랑코 제피넬리가 '오페라에서의 BC는 Before Callas(칼라스 이전)'을 의미한다고 회고할 만큼 그녀는 노래와 연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과 카리스마적인 면모를 인정받았다.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하는 것이 습관'이라고 그녀 스스로 밝혔듯 그녀의 성공은 타고난 재능과 함께 최고가 되겠다는 집요한 의지의 결정이었다. 한 여인으로서는 비극적 일생을 살았으나 예술인으로서 남겨놓은 이글거리는 불꽃의 목소리는 어떤 유혹에도, 어떤 외로움에도 젖지 않고 오랜 세월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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