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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USIC/노래

[노래] The Saddest Thing

by 김귀자 2010. 8. 7.
The Saddest Thing  



멜라니 사프카가 부른 'The Saddest Thing'을 듣게 될때면 고등학교 첫 발령지가 떠오른다.
제 2의 고교시절을 보낼 정도로 수많은 추억을 가졌었던 곳!

처음 발령을 받았을땐 정말 모든것이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인문계 고등학교 임에도 불구하고 화색이 없는 아이들의 얼굴들.
잦은 가출, 부모가 계시지 않아 해인사 스님들이 보호자가 되어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난 행
복했었던 내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이 아이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방송실이라곤 하지만 마이크 달랑 하나 있는 열악한 방송실!
내가 있을때만해도 한학년에 3반까지 있었지만 나중에는 한반이 줄어들어 거의 2반 정도의
수준을 겨우 유지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시절엔 음악과 미술 두과목을 가르치면서 일주일에 아이들을 4시간이나 만나게 되었는데
음악과 미술을 통합한 수업 3시간과 남녀공학의 특성을 이용하여 한시간은 운동장에 나가서
내가 고교시절 배웠던 포크댄스를 가르쳤다.

다행히 교장선생님께서는 그러한 나의 수업을 창의적인 수업이라고 생각하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점심식사 후에 전교생이 좋아하는 에어로빅을 가르치면 어
떻겠냐는 제안까지 해 오셨다. 당시에는 무용을 지도하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던 터라 결
국 나는 무용을 전공했었던 언니를 찾아가 비교적 간단한 '헤이 미키'라고 하는 에어로빅을
배워와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학생들이 속으론 싫지 않으면서도 겉으론 영 쑥스러웠던지 곤혹스러워 하자 마침
내 교장선생님까지 조회대 앞에 나와 지켜서 계셨고 아이들은 마지못해 따라하게 되었지만
이때 추었던 아이들과의 포크댄스, 왈츠, 에어로빅등은 나와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
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학교를 옮긴후에 받았던 학생들의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난 아이들의 추억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방송반을 조직하였다.
먼저 원하는 아이들을 선발한후에 동생이 방송국장으로 있었던 대학교를 하루 방문해서 학생아나운서와 엔지니어 그리고 PD들에게 부탁하여 아이들을 종일 트레이닝을 시키게 하였다.난 새로운 방송프로그램에 맞추어 음악타이틀 테잎들을 구입해 놓았고 마침내 아이들은 아침방송인 '명상의 오솔길' , 점심방송인 '오후의 벤치' 그리고 저녁방송까지 훌륭하게 소화해 내었다.

난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서 테잎을 사다 날랐고 아이들은 요일을 바꾸어가며 체계적인 방송
을 해나갔는데 프로그램은 아이들과 함께 의논하여 교내뉴스, 클래식음악감상, 대중음악감
상, 그리고 신청곡 받고 사연읽어주기등으로 정했다.그러자 갑자기 학교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이었다. 너무나 낭만적인 학교 분위기에 젖어들어서인지 가출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었으며 오고싶은 학교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 인근의 산꼭대기에서 1년전에 죽은 학생 한명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는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1년이 지난 바로 이날의 신문기사는 학교를 갑자기 들끓게 한것이었다.내가 이 학교로 발령받을 당시에 모든 선생님들이 어떤 가출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하고 사려 깊은 아이였는데 왜 가출을 했을까 하는 이야기 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해인사 스님이 보호자로 되어 있었던 그 아이는 곧 아이들과 선생
님들에게서 차츰 잊혀져 갔다. 그런데 그날의 기사에 실린 변사체는 바로 1년전 가출했었던 그 아이였던 거였다. 사인은 자살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픈 마음이 밀려오면서 조금만 더 이 학교에 일찍 와서 그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착잡한 생각으로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미진이가 구석에서 소리없이 울고 있지 않겠는가. 평소에 너무나 의젓하고 차분한 아이였던지라 놀랐다.

다가가서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중학교때부터 너무나 좋아했었던 선배오빠가 죽은 사실을 이야기 했다. 자살했던 그 소년을 짝사랑 해왔던 미진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큰 아픔이었다.
그날 이후로 꽃다운 시절을 버리고 떠나갔던 그 아이가 자주 떠올라 난 더욱더 아이들에게
희망 그리고 행복감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다시는 그렇게 세상을 쉽게 포기할 수 없도록...

음악 수업시간엔 '하얀목련'을 비롯하여 계절이 바뀔때마다 '눈이 내리네','돌아오라 소렌토
로','쉘브르의 우산'을 그 노래들의 사연들과 함께 가르치자 아이들은 더욱 노래에 깊이 빠져들어가면서 이고교시절을 잊고 싶어하지 않았다.

가을이 되자 난 교내 합창제와 반별 장기자랑 그리고 학예제를 하기위해 교장선생님께 허락
을 받았다. 그때만해도 대구에서 출퇴근을 했었는데 늦은시간까지 아이들과 마지막 공연들을 준비하기위해 연습하다보면 언제나 막차를 아슬아슬하게 타곤 했었다.

그러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나도 창원으로 학교를 옮겨야 했다. 어느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옮겨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듬해에 창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차마 아이들에겐 알릴 수 없었기에 그 해의 늦가을 학예제를 준비하면서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떠나야하는 마음이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교차되어 가슴이 한없이 아팠다. 이윽고 교실두칸을 뜯어 만든 강당에 마이크 한대를 놓고 학예제는 진행이 시작되었다. 정말 아이들이 그렇게 잘할줄이야 ... 많은 놀라움으로 그들을 쳐다 보았다.

그당시에 아이들이 즐겨 불렀던 대중가요는 '집시여인' ,'서울서울'...이었던 것 같다. 모두들 함께 열창을 하며 불러대었고 아이들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프로그램에 특별순서로 나의 노래를 넣었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마이크가 꺼졌다 켜졌다 하자 아이들이 웃어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웃을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 새로운 고교시절을 맞은 이 학교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불러주었던 노래는 멜라니 사프카의 ' The Saddest Thing'
' 이세상에서 가장 슬픈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이랍니다.'

떠나오던날 아이들은 더이상 날 쳐다보지 못하고 돌아서 버렸다. 그렇게 사랑했었던 학교가 또 있었을까! 내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그 아이들은 알까! 지금도 슬픔이 일어나면 난 한쪽 구석에 처박혀서 혼자서 이 노래를 중얼거리곤 한다. 가는 학교마다 노래로 나의 심정을 담지만 그때의 추억들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가슴 한켠이 서늘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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