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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class/기악곡 감상

오펜바흐 / 쟈클린의 눈물

by 김귀자 201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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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클린의 눈물[ Les larmes du Jacqueline ]

 
Les Larmes du Jacqueline
Offenbach (1819 - 1880)
Cello / Mischa Maisky



 

자클린느 뒤 프레 (Jacqueline Du Pre,1945 ~ 1987)

 

영국 옥스퍼드에서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프레는 세 살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악기 소리 가운데, 특히 첼로 음을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합니다. 네 살 때 자기 키보다 큰 첼로를 선물 받고 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어릴 때부터 "거장급의 천재소녀" "우아한 영국장미" 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됩니다.
 
16세가 되던 1961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고, 65년엔 뉴욕에 데뷔하면서 그녀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로서 널리 각광을 받으며 활약하면서 가족이 탐탁치않게 여기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유태인이었던 바렌보임을 따라 중동과 전쟁(6일 전쟁) 중이었던 이스라엘까지 날아가 이스라엘 교향악단과 협연하면서 바렌보임의이 지휘자로서 초기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많은 순회공연을 함께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에서 유태인으로 개종하면서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하기 위해 국적까지 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수상인 벤구리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그녀의 나이 23세이던 68년에는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온 뒤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연주는 너무나 힘에 넘쳐 현을 끊어먹는 실수를 저지를 정도였지만 
비평가들은  "그녀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라고 호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황홀함은 5년을 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28세 되던 73년,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사실상 연주 활동의 막을 내리게 된거죠.
 그녀는 그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그 남자는 단지 그녀를 성공의 도구로만 이용할 뿐이었습니다.

바렌보임과 첼로에 대한 사랑으로만 살았던 짧았던 그녀의 생애였지만 바렌보임은 그녀가 희귀병에 걸려 투병생활에 들어가자 병상에 홀로두고 연주여행을 떠났으며 투병하는 14년 동안이나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첼로도 남편도 모두 잃고 오랜 투병 생활끝에 1987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한 번도 무덤을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펜바흐라는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백여년이 지난 후에 베르너 토마스라는 젊은 첼리스트는 미발표된 오펜바흐의 첼로곡을 발견하고서 진한 슬픔이 묻어나는 선율이 마치 자클린 뒤 프레의 삶과 같다고 생각하여 '쟈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여 이 곡을 그녀에게 헌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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