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가을의 운치가 느껴지는 아침이다. 어둠이 내린 창밖엔 아침부터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다. 차를 끓이기 위해 주전자를 불에 올려놓았다.
잡을 수 없는 흐르는 세월을 어쩌랴.
그 속에 녹아있는 아름다움, 슬픔 그리고 아픔들...
그렇게 흐르는 인생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지금
당대 최고의 댄디보였던 명동백작 박인환을 추억하고자 한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서울이 9.28 수복이후 떠났던 문인과 예술인들이 하나 둘 명동으로 돌아오게 되면서다시 활력을 되찾게 된다.
당시 경상도집이라고 불리던「은성」이라는 대폿집에서는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날도 박인환은 작곡가 이진섭, 송지영, 가수 나애심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떨어지자 밀린 외상값을 갚지도 않은 채 또 다시 술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주인은 외상값을 갚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자 외상값 대신으로 시를주면 안되겠냐는 제의를 하며 펜을 들고 종이에다 황급히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세월이 가면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눈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을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작품이 완성되자 옆에있던 작곡가 이진섭에게 곡을 부탁하자 시에 감동을 받은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쓰게된다.
이 곡을 가수 ' 나애심'에게 부탁해 노래를 부르게 하지만 얼마 후 자리를 뜨게 되고
이 노래를 들었던 「은성」 주인은 노래가 너무 슬프다고 밀린 외상값은 안 갚아도 좋으니 다시는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했다 한다.
하지만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 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 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마치 자신의 마지막 생을 예감이라도 한 듯, ‘세월이 가면'을 쓰기 전날 박인환은 10년이 넘도록 찾아가지 않았던 첫 사랑 연인이 묻혀있는 묘지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 날 밤.
'목마와 숙녀'의 시인, '명동백작' 박인환은 '경상도집'으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만 31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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