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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사는 이야기

빛 바랜 가족사진

by 김귀자 2010.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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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를 뚫고 들려온 아버지의 목소리
  해마다 방학이면 우리는 아버지가 계시는 강원도 원통을 찾았다. 땅거미 질 무렵까지 최전방의 관사로 가기 위해 춘천을 지나고 한계령 고개를 넘어 한참을 달리니 저만치에 군인관사가 보인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라 마냥 행복했지만 어린 시절 내내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한 것이 가장 큰 슬픔이었다. 

  충성스런 군인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도 간직하게 되었지만 늘 떨어져 있었던 그 시간들은 그리움에 가슴 아픈 추억일 따름이다. 우비를 입고 트럭 짐칸에 앉아 비껴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던 어린 시절! 그 때의 그 장소 모두 가물가물 하지만 8살 때 가족사진을 찍던 순간만큼은 너무도 또렷하다.

▲ 8살때 찍은 빛바랜 가족사진
ⓒ 김귀자

▲ 다정했던 아버지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순간들
ⓒ 김귀자


  다정했던 아버지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순간들, 램프를 비추며 밤새도록 경이롭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관사 앞에서 눈싸움을 하던 순간들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지금의 나보다 더 젊으셨는데. 엄마 아빠가 그리워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카네이션을 들고 공원을 거닐며 눈물을 훔치며 불렀던 노래 `Mother of mine`.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던 1991년 4월 29일 오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수업을 하던 내게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늘 곁에서 명랑한 모습으로 아버지께 웃음을 안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던 동생이 가슴 아프게 떠오른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던 것일까! 교무실을 나오려는데 하염없이 퍼붓는 빗줄기를 뚫고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귀자야, 아빠 갈게. 잘 있어라`

. 아주 편안하면서도 고요한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남편이 빗길을 뚫고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순간이 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찍었던 비디오를 틀어놓고 TV를 부둥켜안고 우는 동생을 어떻게 위로할 길이 없었던 그 순간.
  집안의 전부였던 아버지를 잃고, 이어진 화장터에서의 이별. 화장터 주변은 4월이라 봄꽃이 만발했다. 따뜻한 봄 햇살에 너무나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봄꽃들. 그러나 그 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이 세상은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대전국립묘지에 총성이 울리고 아버지는 안치되셨다. 오늘도 비는 끝도 없이 내리는데 라디오를 켜니 정수라의 `아버지의 의자`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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