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사신분으로서의 마지막 날이다.
초임지를 향해 작은 봇짐들을 들고서 부모님과 함께 두근거리며 버스에 오르던 날이 떠오른다. 바닷가에 있는 작은 학교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할 짐들을 넣어주고 다시 손을 흔들며 떠나가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그립다. 그렇게 시작한 교직생활이 어느덧 36년이 흘렀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있다면, 우진이와 수진이의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와 겹쳐 식이 거행되고있는 아이들의 학교를 가보지도 못한 채 애국가와 교가를 지휘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 때의 기억들은 아이들에게 늘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둘 다 아름다운 배우자들을 만나 결혼을 하고 수진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귀여운 손자까지 안겨주었다. 결혼을 하고나서부터는 화상통화를 해도 자주 볼 수 없기에 늘 보고 싶기만 하다.
이렇게 아이들 생각에 빠져들 무렵 갑자기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아들부부인가 싶어 문을 열러 나가던 남편이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하민이가 왔네.” 한다. 그 소리에 난 “뭐리구요?” 하며 뛰어나갔다. 세상에... 우진이와 며느리, 수진이와 사위가 손자 하민이를 안고 문 밖에 서있는 것이다. "아니 하민이까지 왔네." 나는 너무 놀라고 기뻐서 순간 펄쩍 펄쩍 뛰었다.
아니 세상에... 이 무슨 감동이란 말인가! 집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식탁에다 케이크, 편지, 선물을 한 아름 올려놓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신나는 ‘퇴임 축하송’과 함께 카드와 캐리커쳐 문구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하는데 ......
엄마의 퇴임식 의미를 깊게 받아들인 우진이와 수진이의 깜짝 이벤트였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랑의 선물이었다. 난 방안에 들어와 수진이가 준 4페이지나 되는 편지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속엔 예전엔 보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들이 가득 적혀있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데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어머니, 아버지의 넘치는 큰 사랑 덕분에 저희들은 근심 없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고 이러한 가정에 태어남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지원자이자 양육자, 스승인 어머니의 퇴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으로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할게요. 지금까지도 어머니,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지만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할게요. 사랑합니다.”
언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을까! 밝고 따뜻한 마음으로 성장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드린다. 지금 이 순간 나 역시 캐나다에 계신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께 가장 먼저 인사드리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세상물정을 모르고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마냥 어리기만 했던 제가 36년간의 교직생활을 잘 마쳤습니다.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교직발령 때보다 더 많은 축하를 받은 명예퇴임!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던 영화 ‘My Way’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1등이 아니라 마지막 결승점에 골인하던 주인공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던 관객들! 인생은 명예, 돈, 권력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살았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다. 인생의 큰 단계를 넘어가면서 마무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위로가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멋진 마무리가 된 인생의 1막이다.
이젠 무엇이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자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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