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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교단일기

음악시간

by 김귀자 2010. 8. 4.

안개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세찬 비바람으로 변해 창문안으로 빗방울이 튕겨져 들어온다.
속히 창문을 닫고나니 습하고 답답한 기운이 음악실을 메우고 있다. 질퍽한 운동장을 바라보니 이 빗속을 뚫고 축구하긴 어려웠는지 아님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보이질 않는다.
지나가는 소나기였을까! 한참 흩뿌리던 빗방울이 이내 잦아들기 시작한다.

우리학교는 특수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통합수업을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반학교에서 통합수업을 시켜온 아이들이다.
책에 얼굴을 바짝 대어야만 보이는 친구는 시각장애를 앓고 있어서 아이들과 같은 수업을 감당해낼 수가 없지만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합창부에 들어와 창원합창제와 도민일보 합창제에서 함께 연주를 했다.
연습시간마다 참여하지 못해 결국 고정멤버에서는 빠져버렸지만 언제든 연습에 참여해도 좋고 따라갈 수만 있다면 함께 출연시키겠다고 했더니 마음이 열리는지 내게 문자도 곧잘 보내오고 잘 웃는 편이다.

이제 장구수업이 막바지에 올랐다.
수행평가 한주전이라 그런지 이젠 세마치, 굿거리, 중모리, 자진모리장단이 어느 정도 리듬이 맞는다.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친구도 오늘은 음악수업에 참여했다.
교문 앞에서 120도 각도로 인사를 하는 아주 예의가 바른 이 친구는 나름대로 한자 공부도 꽤나 열심히 하며 교무실에 와서 수업이 맞는지 선생님들께 큰 소리로 확인하는 성실한 아이다.
요즘은 특수학급 수업 때문에 통 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 수업에 들어와 아이들 틈에 끼여 앉았다.
‘자, 세마치 4번, 굿거리 2번, 중모리 2번 자진모리 4번 연결해서 구음과 함께 시~작’

‘덩 덩 덕 쿵덕 덩 덩 덕 쿵덕 덩 덩 덕 쿵덕 덩 덩 덕 쿵덕’
‘덩 기덕 쿵 더러러러 쿵 기덕 쿵 더러러러 덩 기덕 쿵 더러러러 쿵 기덕 쿵 더러러러’
‘덩 기덕 쿵 덕기덕덕 쿵 기덕 쿵 덕기덕덕 덩 기덕 쿵 덕기덕덕 쿵 기덕 쿵 덕기덕덕’
‘덩 덩 덩 더 쿵 덩 덩 덩 더 쿵 덩 덩 덩 더 쿵 덩 덩 덩 더 쿵’

원을 그리고 앉아서 시계방향으로 장구를 돌려가며 장단치기가 시작 되었는데 마침내 순서가 돌아오자 장구채를 들고 나름대로 열심히 치기 시작하자 함께 치는 아이들과의 장단이 맞지를 않는다.
“너 혼자서 한번 해볼래?” 하자 가르쳐준 장단과는 전혀 다르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멋드러진 장단을 만들어 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의 박수를 받자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인다. 순간 음악치료를 병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해 와서 그런지 친구들이 그런 친구를 너무나 잘 보살피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마치는 종이 울리자 반장이 일어나 “차렷, 경례.”를 외치자 일제히 일어나 음악실 문을 나서며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그 때 독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친구가 돌아가지 않고 쭈뼛거리며 할말이 있는 눈치로 서있다.
“왜 무슨 할말 있니?”
“차렷, 열중쉬어, 차렷, 경례.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그래, 인사 너무 잘하네. 잘가.”
감동이었다. 나름대로 수업에 함께하고 장구 독주를 했었던 것이 즐거웠던가보다.

이어서 4반의 수업이 시작 되었다. 지난 9월부터 외국인인 데이비드가 한국학교를 체험하기 위해 6개월간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벌써 2주가 넘어서인지 한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이젠 제법 반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된다.
처음엔 부끄럼이 많아서 눈에 띄지도 않더니 요즘은 반 아이들과 비슷해져 수업시간에 걸리기도 잘하는 장난꾸러기로 변했다.
머리를 빡빡 깎고 아이들 틈에 끼여 정신없이 축구를 하는 데이비드
거의 한국 학생이 다 되어버렸다.
음악시간
장구수업을 마치고 나면 팝송 수행평가로 인해 반마다 웃음보가 터지는 일이 많이 생겨난다.
시작 종이 쳤는데도 데이비드가 한참 떠들고 있다.
“David, Hands up!"
눈이 동그래져서 손을 재빨리 든다.
그리고는 “Why?"
아이들이 옆에서
“punish...punish"한다.
“Oh! punish?.."
입가에 웃음이 하나 가득한 채 손을 번쩍 들고있다.
둥글게 앉아서 장구연습에 들어가자 데이비드도 곧잘 따라한다.
많이 늘었는데..ㅎㅎ
장구 연습을 끝내고 외국노래 부르기 수행평가를 위한 연습이 시작되었다.
마이야히~ 마이야후~ 마이야하~ 마이야 하하~
요즘에 뜨는 웃음이 묻어나는 곡이라 처음부터 배꼽을 잡는다.
이 반은 팝송 2곡과 샹송을 편집해서 부르기로 했는데 반주를 어떻게 할건지 심히 걱정이 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피아노 반주자가 없어서 M.R.을 구워 오기로 했다는데 어떻게 감당할런지 ...ㅎㅎ
게다가 드럼까지 넣을거라고 한다. 하기야 축제 오디션때 보여준 드럼솜씨는 정말 대단했으니까.
영어가사가 많은 부분은 데이비드에게 Solo를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David, Can you play solo?"
"No, I can`t. My voice is very low." 하며 얼굴이 빨개진 채 사양을 한다.
“You can do it."
“No."
"You must solo." ㅎㅎ
“Oh No."
그러던 데이비드가 앞에 나와서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솔로를 열심히 하고있다. 근데 목소리가 정말로 낮은것을 보니 마이크를 대고 동영상처럼 소리를 깔고 랩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로? 샬루? 시비예음 운 하이둑?"ㅎㅎ
눈을 크게 뜨고 가사에 맞는 익살스런 표정이 절로 나오는 데이비드의 귀여운 모습은 웃음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확실히 외국인들의 풍부한 감정표현은 우리가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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