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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교단일기

민석이

by 김귀자 2010. 8. 22.

교사가 되어 처음 맞이했었던 '스승의 날'

학교를 파하고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 선생님~"

문을 열어보니 한아름의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10여명의 아이들이 문앞에 서있다. 그중에는 민석이도 있었다. 방에 들어온 아이들은 신나게 장기자랑을 하며 놀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신나게 놀고있는데 방 한쪽 귀퉁이에는 민석이가 굳은 얼굴로 앉아있다. 30분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제사 아이들도 답답했는지

"선생님 민석이 오란씨 파인 선전 노래 잘하는데요 한번 시켜요."
아이들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게 정말이야? 와~ 그럼 한번 해봐라 민석아 자 시작~"
......
"하나, 둘 , 셋, 시작~"
......

그러기를 10분이나 했을까.

"그래? 그럼 넌 하지마라. 다음 차례로 넘어가자."
하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각한 표정으로 갑자기 두 손을 높이 치켜드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 오 오란씨 오란씨 오란씨 파인'
완전 열창이었다. 아이들의 박수가 일제히 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민석이의 또다른 기억은 폐품을 이용한 교실꾸미기를 하면서 생겨난다.

우리반은 헌 달력을 이용하여 책상정리를 하는 것이었는데 하얀 헌달력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비닐을 입혀 압핀을 꽂는 것이었다. 하나, 둘씩 책상에 달력이 입혀지면서 교실이 깨끗하고 환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거의 다된 것 같은데 아직 한 책상만이 며칠째 떡하니 버티고있다.
바로 민석이의 책상이었다.

'다음주 월요일이 환경심사야. 월요일 아침까지는 꼭 해 놓아라."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언제나 시원 시원하다.
그러나 남들 청소할때 청소를 하지 않고 있다가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그제야 청소를 시작하는 민석이

그런데 갑자기  
여자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달려온다.

"선생님 민석이가 때렸어요."

" 왜 때렸니?"
"그것은.... 그것은...."
그러더니 또다시 뜸을 들이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이고 답답해라. 말을 해봐라. 말을..."
"그것은 ..."
"그것은?"
"바로..."
"바로?"
"그래서... 어서 말을 해봐."

"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

마침내 월요일 아침까지도 책상에 헌달력을 입히지 못해 또 다시 교무실로 불려왔다.

"선생님, 저 책상에 헌달력 입혔어요."
"정말?"
"네"
"가서 확인해 봐도 되는거지?"
"네 다했어요."
이게 웬일일까!

바로 그 때 복도에서 여자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우리반 여자 아이들이 울면서 뛰어오고 있다.

"선생님~ 선생님~ 흑흑,"
"얘들아 무슨일이야?"
"민석이가 내 책상에 있는 달력 빼서 지 책상에 올려놓고 우리반 아이들 책상에 꽂아놓은 압핀을 전부 다 뽑아서 지 책상 다 박았어요."
아뿔사...

체육시간이 되었다. 멀리서보니 우리반 아이들이 제식 훈련을 하고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향 우"
"하나"
"좌향 좌"
"하나"
"우향 앞으로 가"
모두들 잘 가는데 민석이만 반대 방향으로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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