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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교단일기

첫 발령지의 추억

by 김귀자 2010.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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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령을 받고서 보따리를 싸 부모님과 함께 경북 영덕군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집과 떨어져 있게 된지라 낮선곳에 대한 두려움이 반이던 그때 갑자기 마중나온 아이들이 보인다.

"안녕하십니껴?"
아이들이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끌어당긴다.

"얘들아 무겁지?"
"아니더, 억수로 헤깝니더."

억센 말투가 꼭 반말처럼 들려온다.
자취집에 도착하자 가방만 덜렁 내려놓고서 부모님은 떠나 버리셨다.
부임한 첫날부터 어려움은 시작되었다.

담임에다 미술과목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1,2,3학년 모두가 겨우 7학급인 때문이었다.
자신없으면 사표를 내라는 말에 마음을 다부지게 고쳐먹었다.

앞에는 산, 학교뒤로 빠져나가면 해수욕장 이었지만 여름한철을 제외하곤 늘 작전지역이라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
남정의 바닷가는 늘 어두웠었는데...
담임을 맡으면서 난 참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우리반 아이들의 아버지가 폭풍에 휩쓸려 돌아오지 않았던 기억들
농약을 먹고 자살했던 아이들의 어머니
아름다운 영덕의 해안가를 뒤로하고 생계와의 전쟁을 보면서 낭만이라고는 느껴볼 수 없었다. 그건 단지 외부 관광객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해마다 여름의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나면 어느 누군가가 죽었다고 들려오는 소식들
사람을 빨아들일 것 같이 거센 소리로 불러대는 파도소리
난 그 검푸른 바닷가가 무서워 늘 돌아서 가곤 했었다.

심심하면 가출하는 아이들
왜 안때리느냐고 반항하는 아이들
학급의 반장조차 반항으로 무장을 했다.

초임교사인 나의 표준말과 존대말 사용이 아이들에겐 무척 거슬렸는지 영 잘따라주질 않는다. 마침내 교장선생님께 학급경영을 가장 못하는 선생님이라고 꾸지람까지 듣고 말았다.

원농작업에 따라나섰던 그해 여름
비상구급약들을 들고 다니며 아이들을 치료했다.
평소에 거친 아이들인데도 밭일을 무척이나 잘해내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이다.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반가를 만들기 시작했고 율동까지 섞어 노래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힘들게 살아가던 아이들과 함께 그 아픔들을 공유하였다. 아이들은 자취를 하던 나의 집으로 자주 몰려와 놀았다.

칠판엔 항상 '서로 사랑하라' 라는 글귀를 써놓고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했으며 반친구들의 생일이 되면 자그마한 카드와 선물들을 준비했다.
담임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의 기뻐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반 여자아이에게서 쪽지가 왔다. 삐뚤빼뚤하며 맞춤법은 엉망이었지만 시인처럼 아름다운 글이었다.
언제나 여자라고 무시당하며 살아왔고 생일선물이라고는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선생님께 선물을 받고나니 눈물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으로만 생각했었던 교직
이 첫 발령지에서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기다릴줄 아는 사람이 남아야하는 고귀한 곳이 교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아무런 이유없이 아이들이 좋아졌다.
그래서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갈때면 보이지않을때까지 손을 흔들어댔다.
그래서 아직까지 난 교직에 남아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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