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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체험기

유럽여행기

by 김귀자 201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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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목

12:15 부산 김해에서 JAL968기

13:40 간사이 공항도착(오사카) 니코 간사이 공항호텔 1박
 

여기 일본은 내나라를 걸어다니는 것 같이 별 특별함이 안느껴진다. 그렇지만 무엇인가를 얻고 갔으면 좋겠다. 내겐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며 할일도 많은데...

2인1실이라 그런지 오늘밤은 무척 편하게 느껴진다.

하나님께서 매순간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한다.

이번 여행은 모든것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프다.

이 귀한 시간들을 소비하지 않고 다시한번 나의 인생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프다.

여행기간중 곡을 하나 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온 마음을 다하여 내가 쓰고 싶은 가사를 이 기간에 완성했으면 좋겠다.

또한 논문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준비를 해야할텐데...

 

일본에서 무엇을 사먹는다는 것은 돈을 길거리에다 뿌리는 것 같다.

와! 비싸다.

먹고싶어도 참아야하네. 하지만 도시락은 450엔 정도이고 우동은 430엔 정도니까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같이있는 선생님들은 모두 성격좋고 원만해 보인다.

남편을 포함하여 총인원은 11명.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내일은 밀라노 행이다.

 

8.1. 금

 

일본 간사이 공항에서 오전 11시 55분 BL 400기로 출발

12시간 만인 현지시간 오후 5시 15분경 도착

 

밀라노 공항에서 내려 렌트카 승합차와 자가용을 빌렸다.

드디어 자동차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어두워지자 싼 모텔을 찾느라고 두시간을 헤매고 헛탕치길 반복하다 가까스로 꼬모 빌리지 근처 호텔을 잡았다.

그 곳은 산중턱에서 해안을 끼고 있었는데 야경이 아주 아름다웠다.

도로는 미로처럼 좁았으나 건물들은 옛 상태를 보존하고 있어 그런데로 정취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들이 매사에 계산적이었고 그다지 친절하지 않아 많은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중급 호텔에 2인 1실에 들어왔지만 첫 출발이 조금 힘들어서인지 모두들 기진맥진이다.

 

8.2. 토

 

오늘은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왔다. 밀라노에 비해선 한결 자연의 아름다움이 많이 느껴진다. 타쉬라는 곳에 도착하니 알프스의 산이 보이는데 캐나다 산들을 바라보는 느낌이었지만 보다 오밀조밀 하면서 아름다운 자태가 뛰어나다.

하지만 상상했었던 것 과는 달리 이 지역 사람들 역시 지나치게 상업적이라 많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내일은 등산 열차를 타고 알프스 알프스 정상까지 올라갈 예정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모두들 호프집에 들러오랜만에 한가로움을 즐겨 보았다.

 

8.3. 일

 

알프스 정상정복 마터호른!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느 산 보다도 수려하고 장엄하다.

하루종일 알프스에만 있었다.

기차를 타보기도 하고 또 케이블 카를 타기도 하다가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스키장까지 가보았다. 겨울산을 볼 수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산 꼭대기까지 길이 나 있다니 정말 신기도 하다.

어쩌면 그렇게 높은 꼭대기까지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정상을 오르다 숨진 많은 산악인들의 묘비도 산중턱에 보인다.

집집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장식을 하고 있어서 절로 발이 멈춰지는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다시 루체른으로 향하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식사가 늦어서인지 모두들 몹시 배가 고파 라면을 끓였더니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간다.

 

8.4. 월

 

루체른에서 새 아침을 맞이 하였다.

시내를 돌아 보덴호수와 다리를 건너 산책을 하다보니 ‘빈사의 사자’가 나타난다.

시계의 나라인 스위스 인지라 동료들 모두 시계상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나도 결국 들어가서 예쁜 시계들을 몇 개 샀다.

다시 렌트카에 오르라하자마자 시속 160으로 달린다.

쮸리히 시내를 지나고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쯔를 지나 약 6Km나 되는 긴 터널을 통과해서야 독일의 퓌센지방에 닿았다.

1인당 43마르크 우리돈으로 21,500원쯤 되는 비교적 그런저런 숙소를 잡고 나서야 다시 관광지로 이동 하였는데 이 곳에는 저 유명한 루드비히 2세의 성인 ‘새 백조의 성’이 있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꿈속의 성처럼 그렇게 앞에 펼쳐진 고성을 보니 가슴이 서늘하였다.

벌써 늦은 시간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한다.

첩첩산중의 절벽위에 안개낀 고성!

그 밑으론 호수가 있고 노을이 진다.

루드비히 2세는 예술가 였던 것 같다.

그는 늘 이 절벽위에서 그림을 그렸고 바그너의 음악들을 좋아했으며 절벽위에 성을 짓고 싶어 했었다.

성을 짓고 난 이후 며칠도 못가서 결국 그는 투신자살을 하게 된다.

그곳을 바라보니 오랫동안 있고 싶어진다. 그러면 곡을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8.5. 화

 

아침 식사로 빵을 대신하고 그곳을 떠났다.

‘새 백조의 성’이 저만치 사라져 간다.

루드비히가 바그너의 음악세계에 도취되어 결국 성을 짓게 되었고 그 음악속의 주인공들과 사랑을 나누었으며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다 결국 외로움 속에서 파멸의 길을 걸어갔다는데 왜그런지 발이 안 떨어진다. 그가 너무나 깊숙이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지나가는 독일의 평원이 내 마음을 재워주는 듯 하다.

저 아름다운 평원에서 여유를 마음껏 만끽하고프다.

그런 잡념들이 뇌리에 스쳐가는 동안 어느새 모차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짤즈부르크에 도착하였다.

우린 먼저 유스호텔을 찾았는데 회원증이 없어서 거절 당하였다.

결국 중국인이 경영하는 모텔을 얻어 그 곳에서 짐을 풀고 세탁소에 그동안 밀린 빨래들을 하기위해 1시간 30이나 걸려 약 20마르크의 세탁료를 냈다.

 

8.6. 수

 

이른 아침부터 모차르트가 살았었던 집과 그의 박물관을 견학하였다.

그의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거리가 온화하게 집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가 만들었던 악보들이 진열되어 있는걸 보니 그가 음악을 만들었던 느낌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무척이나 감회가 새롭다.

한쪽에서는 그의 대작인 오페라 ‘마적’이 상영되고 있었다.

의상들도 쭉 진열되어 있고 곳곳에서 마적에 관한 해설이 있다.

우리들이 관람을 하던 중 누군가가 쇽크적인 뉴스를 전해준다.

한국에서 KAL기가 괌으로 가다가 심한 폭풍우를 만나 산위에서 5동강이 난채로 추락했다는 비보였다.

모두들 너무 놀란 나머지 저마다 한국을 생각하며 전화를 한다고 난리였다.

충격속에서 오전을 보냈지만 다음코스인 미라보 공원으로 향했다.

이 공원은 영화 Sound of music을 찍었던 곳이라는데 역시 꽃들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공원이었다. 거리엔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있고 묘지들이 공원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주 인상깊었다. 또한 고성들도 많이 보였는데 자주 히치하이크족, 바이크족, 자전거족, 롤러족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

 

다음 목적지는 하이델베르크이다.

 

8.7. 목

 

여기는 하이델베르크!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을 찍은 곳으로도 유명한 이곳.

거리의 상가에서 물건을 만졌다는 이유로 선생님 한분이 독일 여자 상인에게 호되게 당했다.

건물들은 꽤 고풍적이며 마음에 든다.

성위의 전망대에 올라가니까 아주 상쾌하다.

성안을 돌면서 구시가 중심거리인 하우트슈트라쎄를 끝까지 걸었다.

넥카 강가를 걷다가 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니까 ‘철학자의 거리’가 나온다.

정말 오랜만에 긴 산책을 하고 있다. 남편이 참 좋아하는 것 같다.

하이델베르크 시내 중심가인 비스마르크 광장을 지나서 숙소로 돌아오는 중에 우리나라 대학교 2년생을 만나게 되었다.

올해 두 번째 유럽여행을 온 대찬 젊은이였다. 혼자만의 배낭여행!

정말 용기가 넘치는 젊은이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모두 함께 돌아와 라면과 김치를 먹으며 많은 대화들을 나누었다.

다시 암스텔담으로 떠난다는 그를 마중하면서 안스러운 마음이 든다.

밤이되자 우리는 맥주를 마시러 시내로 나갔다. 모두들 한잔 마시는 동안 캐나다로 전화 하기 위해 난 전화기를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모두 카드 전화기 뿐이라 난감해하는 나를 보던 버스를 기다리던 젊은 아가씨가 내게 다가왔다.

전화카드는 우체국에서 팔지만 지금은 문을 닫았으니 자신의 것을 쓰라면서 주는것이다.

내가 돈을 주려했지만 버스가 와서 타고 사라져 갔다.

그러나 이번엔 카드 사용법을 알지못해 애를 먹던 내게 옆 전화기에 있던 청년이 도와주어 전화를 걸었지만 그 카드에는 9마르크 가량의 돈이 있었던지라 내가 충분히 전화를 걸고서도 8.4마르크나 남아 여러 선생님들이 집에 전화를 할 수 있는 횡재를 누린 것이다.

인심 사나운 독일 상인들로 인해 정이 뚝 떨어졌던 독일 이지만 그 젊은 두 사람으로 인해 좋은 기억을 담고간다.

 

8.8. 금

 

로렐라이 언덕에 도착해보니 지극히 평범하고 밋밋한 바위일 따름일 뿐인데 사람들은 거기에다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가는곳마다 장사속이 엿보이고 이 세상에 환상의 실재란 없다. 그렇게 유럽의 환상은 깨어졌다.

라인강변을 계속해서 따라 내려가다보니 곳곳에 고성이 보이며 아름다운 도시들이 형성되어있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방문지인 쾰른 대성당에 도착했다.

약 600여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하는데 정말 웅장하고 섬세하다.

고딕양식을 지어진 하늘을 찌르는듯한 첨탑과 경이로울 정도로 섬세한 기둥들과 조각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는지를 가늠할 만하다.

그 앞에 있는 광장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시간이 많지 않은지라 아쉽게도 그곳을 떠나서 벨지움을 넘어 프랑스 아미앙스에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마음씨 좋은 호텔주인을 만나 예전에 내가 알았던 불어들을 조금씩 써 먹자 잘 알아들어 주는 할아버지가 참 고마웠다.

예전에 내가 만났었던 프랑스인들에 대한 좋은 추억이 프랑스에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해서인지 이 곳 프랑스 아미앙에서의 첫 밤은 벌써부터 친근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난 원래 술을 싫어하는지라 집에서 있자 남편은 다른 선생님들과 술집엘 갔다가 인정많은 시골사람들에게서 받았던 감흥이 꼭 우리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감이었다고 말했다.

 

8.9. 토

 

프랑스의 민족성은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폭주족들의 대단한 굉음을 내며 무리를 지어 좁은도로를 누빈다.

유럽은 돈이 없이는 되는 것이 없다.

공공화장실에서부터 길거리 악사까지 곳곳에 돈을 넣는 함이 있는것을 보니 질리기 시작한다.

오늘 우리가 찾아간 곳은 몽생미쉘이다. 아주 거대하고 웅장한 성이 눈앞에 당당하게 버티고 있어서 한눈에 압도당했다.

간만의 차가 크기로 세계에서 3위안에 든다는데 그 큰 성 전체가 바닷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져버린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땐 물이 다 빠진 시기라 바닥이 진흙 투성이 였던지라 머드팩 그 자체였다.

오늘밤도 방 잡기가 무척이나 힘들어 오후 8시 30분을 넘겨서야 싼 방을 Vallence에서 찾았다. 피곤한 하루지만 모험의 연속인 나날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8월10일 일

 

드디어 파리에 입성!

와! 이곳 파리는 거리 전체가 아름다운 조형 예술인 것 같다.

근교에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들렀다. 루이 14세가 약 50여년에 걸쳐 지었다고 하는데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하며 궁전 뒤의 정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곳을 돌려면 마차나 투어열차를 타야만 할 정도니까 오죽하랴.

하지만 난 이 크고 넓은 곳이 마음에 든다.

부르봉가의 화려함이 눈에 들어오는 듯 하다. 노인 슈반스타인(새백조의 성)의 주인인 루드비히 2세가 좋아했었던 루이 14세

그의 궁을 특히 좋아했었던 루드비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파리 시내는 너무 복잡해서 발디딜 틈이 없어 숨이 막힌다.

저녁에는 몽마르뜨 성당과 그 주변거리를 전철을 타거나 걸어서 돌아 다녔는데 주변이 너무 아름다워 아주 낭만적인 시간들을 우리들은 거리에서 보냈다.

 

8월11일 월

 

주차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전쟁이 시작 되었다.

결국 우리들은 전철을 타고 르부루 박물관으로 향했다.

힘들게 티켓을 끊은 후 안으로 들어가니 실로 장관 이었다.

하지만 그곳의 나폴레옹이 훔쳐온 물건, 전쟁의 화려한 기념비가 있는 진열품을 보는 순간 세계사의 모든 중심지었던 유럽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한국가이드를 쫒아 다니며 열심히 주워담는다고는 했지만 전혀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12시가 넘어 광장을 나와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 하였다.

오랜만에 고기에다 된장국을 먹었더니 마음이 푸근하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노틀담사원과 에펠탑을 구경 하기로 했다.

사원은 늦은 시간이라 문이 닫혀 실내를 구경할 수 없었지만 에펠탑은 화려한 조명에 뒤덮여 무척이나 환상 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전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8월12일 화

 

오전 11시를 넘기고 나서야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리를 나왔다.

모두들 각자 여러조로 나뉘어 헤어졌지만 우리조는 어제 보지 못했었던 노틀담 사원과 그 주변의 쇼핑센터를 돌아 보았지만 하필이면 쉬는 곳이 너무 많아 또 허탕을 치고 말았다. 결국 다시 돌아와서 수제비를 해먹었다.

난 주소만 들고서 프랑스에 살고 계시는 프랑스할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힘들게 찾아내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댁에는 아무도 계시지 않아 또다시 헛걸음을 하고는 돌아 왔다.

 

8월13일 수

 

이 곳 유럽에서는 남의 물건을 손대거나 화장실 사용시 줄을 제대로 서야 하는 것이 철칙 이라는 것을 배웠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때문에 오히려 무너지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오늘 관광할 곳은 베르사이유궁전 내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세계를 점령한 전쟁의 흔적들로 장식 되어있다. 루드비히 2세가 그렇게 좋아했다던 부르봉 왕가의 방들은 그리 많진 않았지만 루이14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방은 사방이 금박으로 뒤 덮힌듯 했고 천정엔 하늘이 열린듯한 맑은 하늘에 천사들이 노는모습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어 마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궁전에서 아래 정원을 내려다보니 정말 장관이다.

인간의 욕망의 끝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정도로 보이지 않는 넓은 정원은 원래 늪이었는데 오로지 인부들이 그 늪을 메웠다는 말이 실로 믿어지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정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길을 재촉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산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고 그 빛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을을 받으면서 우리는 Fimotel 이라하는 아름다운 모텔을 찾아내었다.

산 밑에는 론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작은 길이 새로 나있다.

그 아름다운 길을 시간 반이나 산책을 하고서야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는 곡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8월14일 목

 

이 마을 이름이 valence라 한다.

밑에서는 성을 비추는 불빛이 보이고 잔디에는 스프링쿨러가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어젯밤 산책했던 곳이 좋아서 아침에는 사진을 한장 찍어 두었다.

지금까지 머문곳 중에 가장 싸고도 아름다운 방이었던 모텔을 또다시 떠나 우리는 니스로 향하고 있다.

중간에 휴양지를 잠깐 들러보는 정도로 드라이브를 마치고 또다시 모나코를 지나왔다.

아름다운 환상을 가졌던 그레이스켈리의 궁이 있던 모나코!

좁은 도로에 작은 마을에 불과할 시가지를 둘러보니 예전에 막연히 그리던 꿈의 왕국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프랑스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교황의 유배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꽤 큰 성곽을 둘러 보니 성 전체가 프레스코화로 장식 되어 있었다.

그래도 프랑스는 꽤 정이 가는 나라이다.

드디어 이탈리아에 들어왔다.

산과 바다가 접해져 있는 한적하고 고요한 아름다운 모텔을 잡았다.

 

8월15일 금

 

로마를 향해서 출발!

가는 길에 피사의 사탑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된 성당과 조금씩 기울어져 가는 사탑을 보니 이 모든 건축양식들이 1300여년에 착공된 그대로라 한다.

성당엔 방문객이 금지 되면서 추기경이 도착하니까 일제히 미사를 알리는 성가대들의 모테트 소리와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나오자 경찰들이 성당 문을 커튼으로 내려 버렸다.

오늘이 성모승천축일 이라고 해서 아주 큰 미사가 열리고 있는 것이었다.

거리엔 여러가지 상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으며 특히 가죽제품들이 눈에 띈다.

다시 차를 몰고 피렌체로 향하였다.

사전에 차안에서 르네상스 양식에 대해서 공부를 해 놓으니까 훨씬 이해하기가 쉬운 것 같다.

유럽과 우리나라는 많이 닮아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철학, 세계사, 서양음악사, 서양미술사들의 총체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멀리만 느껴졌었던 과거의 세계사가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

모든 문화의 발상지가 이곳 같은데 지금은 공해와 상업주의의 발달로 인해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가 힘이든다.

곳곳에서 광장을 볼 수 있고 거기에서는 많은 연주자들이 수준높은 연주를 하고 있다.

대부분 내가 아는 연주를 하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다.

그 유명한 낙하의 법칙인 진자의 법칙을 발견했다고하는 갈릴레이가 피사의 의과대학을 나왔다고 한다.

기울어진 피사노의 사탑은 경사가 5도 30분 이라나!

피렌체에서는 1시간 정도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정말 굉장했다.

메디치가의 역사, 광장, 건물, 두오모 성당

두오모는 화려할 뿐 아니라 실내엔 프레스코화가 천정에는 최후의 심판의 모습들이 프레스코화 되어 있다.

돔 형식 이라는 둥글고 웅장한 천정이 권력과 번영을 상징하는 그 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 한다고 한다.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에 대한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작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브론즈로 된 ‘천국의 문’은 금붙이로 입혀 만든 기베르티의 대표작으로 그 섬세함이 눈에 뜨인다.

성을 나와 호텔로 돌아왔다. 이 호텔에서는 식당이 있어서 오랜만에 거기서 정식을 먹었는데 백포도주, 스파게티, 샐러드,감자,양파,쇠고기가 섞인 메인 요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일을 내오면서 1인당 우리나라 돈으로 10000원 정도하는 꽤 괜찮은 요리였다.

식당 주인 식구들은 대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보나 노테!

 

8월16일 토

 

아침을 맞이하여 우린 또 폼페이를 향하였다.

여행의 종반전을 맞이하여서인지 서서히 유럽에 적응이 되고 있다.

폼페이는 AD76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죽음의 재로 뒤덮힌 곳이다.

그 현장속에 처참히 죽어가던 모습들이 그대로 인간박재 되어있다.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서 인지 참혹했었던 최후의 날이 끔찍하게 살아있었다.

폼페이의 화려했었던 전성시대가 일순간에 몰락했던 최후의 날!

곳곳에서 그 화려함이 느껴지고 갖은 모습속에서 일그러진 박재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존재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참으로 작았었던 것 같다.

모습들도 동양적이고.

유럽을 공부하는 데 꽤 도움이 된 유적지이다.

 

장소를 옮겨 나폴리에 도착했다.

저 유명한 산타루치아 항구, 산카를로 대극장, 광장들이 있었지만 그 화려함이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다시는 오고싶지 않을 정도로 가난하고 거리 전체가 쓰레기로 뒤덮여 있고 거리는 음산하다.

산타루치아는 세계 3대 미항중의 하나라고 불리우는데 왜 그런말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옛날의 그 화려했던 곳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질서가 없는 부랑자들의 도시로 변했을까!

네로 황제가 쉬어 갔었던 곳이라는 이곳이 돈을 가지고 다니면 안될 정도가 되었으니...

우리가 떠나려고 하자 갑자기 큰 차가 시동이 안 걸린다. 30분을 걱정하면서 우왕좌왕 하다가 주유소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긴 쇠막대를 가지고 와서 두번정도 두들기니까 기가막히게 시동이 걸렸다.

우리모두는 박수를 쳐댔고 모두 감사합니다인 ‘그라찌에’를 외쳐댔다.

그렇게 해서 다시 로마로 떠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일행들은 모두 어제 머물렀었던 체프라노의 IDA호텔을 원했다.

다시 돌아가서 저녁을 마쳤는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까 2살짜리 주인집 딸아이의 생일잔치를 벌이기 위해 친구 가족들을 다 불러모아 파티를 벌리고 있었다.

아이 생일잔치라 어린이 놀이시설(자가용, 미끄럼틀, 시소)과 장난감, 풍선으로 뒷 정원을 화려하게 장식 하였다.

주인이 건네준 음료수를 마시면서 그들과 함께 앉아 있노라니 큰딸 베네딕트가 친구인 베아트리체와 함께 내게 관심을 보인다.

우리 수진이가 보고싶구나.

 

8월17일 일

 

체프라노를 떠나 약 1시간만에 로마에 입성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로마시내로 나가보았다.

포로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중심지 였는데 그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 당시엔 굉장했겠지만지금보니까 마을이 작게 느껴진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기념하는 개선문, 콜롯세움, 원로원이 보인다.

 

테르미니역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이었는데 지금까지의 번잡하고 웅장한 성당들에 비해서 매우 조용하지만 내부가 아름답고 정교하게 아기예수, 성모 마리아, 동방박사, 성자들을 표현하고 있었고 곳곳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경이로움을 자아냈다.

 

다음으로 떠난곳은 원형극장

옛 크리스천들이 사자들에게 잡아 먹혔었던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지하 감옥의 미로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사자들의 보호소들도 눈에 띈다. 중앙에 있는 왕의 자리를 보면서 그 시대의 왕의 권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식사를 하고나니까 어둑해진다.

다시 낮에 돌았던 캄피돌리아 광장을 지나서 베를리니의 아버지가 ‘노아의 방주’를 보고 만들었다는 ‘조각배’분수 앞에서 시원한 물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뚫고 들어가 사진도 찍고 한참이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로마의 휴일’에서 나오던 ‘트레비 분수’를 헤매면서 찾아갔다.

오드리 햅번이 멋진 연기를 해보였었던 곳!

많은 사람들이 거기다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동전을 한번 던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온다고 하고 두번 던지면 원하는 사랑이 이루어 진다고 해서인지 모두들 너도 나도 던져댄다.

즐거운 밤산책을 하다보니 벌서 시계가 밤 11시 30분을 가르킨다.

모두들 부리나케 호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보름이다. 큰 달이 꽉 찬채로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고 그 옆에 별이 한 두개 보이면서 작은 흰구름이 들이 보인다.

밤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어둡지가 않아 꼭 저녁 같다.

늘 이렇게 밤산책을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8월18일 월

 

로마에서 이틀째 밤을 보낸다.

오늘 다녀온 곳은 오전엔 바티칸 안의 시스티나 예배당, 성 베드로 교회를 오후 늦게는 나보나 광장, 판타니옹엘 들렸다.

시스티나 예배당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 샤갈등의 작품들이 있었는데 과연 그 회화솜씨가 절묘하다.

메디치가 사람들이 밀어주었다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보고나니 고교시절 배우고 들었었던 그들의 명성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듯 하다.

이러한 선조들 때문에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 베드로 교회는 신교와 구교가 만나는 곳 같은 느낌을 준다.

신앙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조각하고 모셔 놓은 것들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모든 성당들은 촛불과 금들로 장식 되어있고 대리석 모자이크 벽화와 지하엔 성자들의 묘가 화려하고도 근엄한 표정으로 누워있다. 물론 조각이지만...

그러나 시스티나에서 보았던 이집트의 미이라는 썩지않고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좀 쉬다가 다시 저녁이 되어 나보나 광장쪽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시원한 바람과 분수 그리고 여유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우리의 마음은 곧 넉넉해져 거리에서 한시간 동안이나 실컷 노래를 부르다 12시를 넘기고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8월19일 화

 

로마에서 마지막 날이자 유럽 여행의 종착지점에서 점심을 지나보내고 있다.

오늘은 카타콤베를 갈 예정이다. 두번째 오는 선생님들은 지난번에 다녀오지 못한 곳을 가기 위하여 각기 제갈길을 가버렸다.

역시 선생님들이라 그런지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해서 마치 연수를 온 듯 하다.

카타콤베!

내가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

초기 크리스천들의 신실한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다시 부활하는 생명의 약속에 대해 죽어가는 마지막까지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남기고자 했었던 흔적들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50만명이 이 지하무덤에 묻혀 있었다고 하는데 길이는 500km가 넘는다고 한다.

곳곳에 가족무덤이 있었고 거기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으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는 메세지(어린양을 매고 있는 목자-구원한 영혼, 물고기Ichtus-그리스도, 팔을 벌린 기도자-천국에 간 영혼)가 새겨져 있었다.

무덤인데도 그것이 내게 어둠이 아니라 밝디밝은 빛과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감동적으로 카타콤베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난 많은 기도를 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가스가 다 될때까지 기다렸다가 새로 넣어서 밥을 하려고 먼저 수박, 라면, 햄버거들을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최후의 성찬처럼 꽤 푸짐하다.

 

오후엔 웬종일 쇼핑하는데만 신경을 썼는데 결국 가죽가방과 망토를 샀다.

가죽가방은 트레비 분수 앞에서 샀는데 다른 곳에 비해 좀 싼 편이었고 망토는 뽀쁠라 광장 주변인지 스페인 광장 주변인지 분간이 안 가지만 4층 건물 전체에 가격이 저렴하고 물건이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많은 크리스찬 디올 상점에서 샀다.

내 망토는 17만리라 약 8만 5천원정도.

그렇게 해서 우리의 기나긴 여정은 끝이났다.

내일 새벽 6시 50분 기차를 타려면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만 한다.

 

8월20일 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로마에서 타서 3시간쯤 가니까 모스크바에서 한번 착륙을 하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넓은 땅과 숲 그리고 강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그 옆으로는 인형곽 같은 집들이 장난감처럼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내려서 관광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린 공항밖을 떠나진 못했다.

모스크바에서 잠시 내리라고 해서 모스크바인들을 보니 여자 장교들의 근엄한 모습과 무표정한 얼굴들이 옛 공산국가임을 실감하게 한다.

상점에선 모자나 코트 같은 것들을 판매하였고 소련 특유의 단조풍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곳을 못 떠난다면 다시는 내조국으로 돌알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감도는 모스크바 였다.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로마-모스크바-동경-김해

 

올때가 갈때나 모두 JAL을 이용하고 있다.

기내식사가 어떤 것은 먹을만하고 어떤것은 모양만 좋지 영 먹기가 힘든 것도 있다.

지금은 어느지점 까지 와 있을까!

가끔씩 흔들리긴 하지만 비교적 고요한 비행을 하고 있다.

얼마전 KAL기 추락사건 소식을 접해서인지 괜시리 겁이 난다.

폭풍우로 시야가 가려져서 거의 도착할 즈음에 추락을 했다고 하는데...

기류를 만나지 않고 조용하게 잘 도착했으면 좋겠다.

주위를 들러보니 모두들 피곤한 모습들이 역력하다.

창밖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번 밀라노로 갈때는 기내에서 백야를 봤었는데 지금은 기내에서도 깜깜한 한밤중이다.

눈꺼풀이 무겁지만 아직 깊은 잠은 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두번 졸고 점심, 저녁을 두번 먹었는데도 반을 채 오지 못한 것 같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스튜어디스들이 정말 고되게 느껴진다.

그래도 일본인 스튜어디스들은 밝은 표정으로 손님들을 대하고 있다.

캐세이퍼시픽 스튜디어스 였었던 나의 친구 이현주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된다.

연락이 끊어져서 많이 안타깝다.

그만둔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디서 뭘하고 지내는지.

 

다시 비행기에서도 날이 밝았다.

차창너머로 구름이 하얗게 수많은 산들과 지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구름을 바라보니 그름을 타고 날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이 황홀함!

반대편 창가에서는 석양이 지는 모습으로 실로 장관이다.

정말 아름답다.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가면서 4가지의 색을 발하고 있는 백야를 뒤로하고 지지않던 일몰이 어느새 일출로 바뀌었다.

어마어마한 광경이다.

천지가 붉은빛으로 돌더니 서서히 아주 진한 붉은 빛이 점점 커지면서 마침내 원을 그리며 두둥실 구름위로 떠 올랐다.

기내 손님들은 모두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저마다 창가에 삼삼오오 모여있다.

 

8월21일 목

 

비행기에서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온 사방이 붉은 빛과 엷은 주황색 빛으로 깔려 있으며 비행기는 구름을 가르면서 넓디 넓은 태평양 위를 지나가고 있다.

어둡던 사방이 환해지면서 붉은 해는 주황빛에서 노랑빛으로 바뀌는데 눈이 너무 부셔 준을 뜰 수가 없다.

내가 앉아있는 서쪽의 자리에 까지 서서히 연한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일출 장면은 평소에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터라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말로 표현하기가 힘이든다.

수평선 상에 있는 해의 모습에 다시금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있다.

유럽인들이 색감에 중점을 두는것은 바로 이러한 대자연의 모방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대기 오염으로 인해 맑은 하늘을 제대로 잘 볼 수 없어 매우 아쉽기만 하다.

햇빛 알레르기로 고생을 해서인지 언제나 햇빛을 피해만 다녔었던 나이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오늘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밀라노로 가기 위해 출발할땐 비행시간이 무척 지루하게만 느껴졌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구나.

모두 16시간을 오면서 낮과 밤이 경험하였다.

이제 긴 여행이 모두 끝났다.

시차가 바뀌어서인지 매운 피곤하다.

이젠 밀린잠을 실컷 자볼까나!

 

 

 

 

2004년 8월 3일 영국-프랑스-스위스-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12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시차극복이 아직 안된다.

결국 일어나보니 12시다. 하하하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행군 이었다.

서쪽 북쪽을 동분서주 하며 종일 뛰어다닌 하루 하루들...

마치 올해 초 힘들게 다녀왔던 제주도 수학여행이 연상될만치...

 

이번 여행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시차적응 - 화장실 찾아 숨바꼭질 -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물 한모금 - 일행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순간 달리기 - 소매치기 안 당하는 법에 대한 수차례 연습과 긴장 상태 유지 - 높은지대(만년설) 이동으로 인한 귀앓이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유적지 및 박물관 답사 - 기차, 배, 비행기 - 먹기 힘든 현지식사 - 구석자리 식당 - 친절하고 품격있는 버스와 운전기사 - 영화 5편 감상 - 공중에서 본 지중해 (삭도) - 꽃이 가득한 베란다 - 비행기 출발 시간 직전에 잃어버린 일행의 기다림의 초조 - 시차적응

하하하

 

화장실과 물 그리고 소매치기와의 전쟁 이었던 여행

유료화장실과 사먹어야 하는 물때문에 인간의 한계를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기차와 버스 그리고 배와 비행기를 지겹도록 탔다.

유로스타와 떼제베

곤돌라와 고속정

삭도타기

여행이라기 보다는 끊임없는 세계사의 체험학습의 장이었다.

모든 과목들의 공부를 이런 식으로 체험 하면서 한다면 전혀 지겹지도 어렵지도 않으며 즐길 수 있을텐데...

모두 어려운 이야기 들이었고 완전 수박 겉핧기 였지만 수 많은 곳들에 대해 가이드 들의 끊임없는 설명과 함께 역사의 현장들을 답사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아주 즐겁게 경청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 유적지와 관련있는 영화를 사전에 보여 주어서 그런지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던 것 같다.

 

다녀보니 곳곳에 중,고,대학생 자녀를 데리고 함께온 한국 가족팀 들이었을 뿐 아니라 거의 한국사람이 깔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그룹들이 와서 그런지 현지인들에게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역시 선생님들이 많이 보인다.

함께 했었던 현대고 영어선생님과 물리선생님 가족들은 사전준비가 아주 잘 되어 있어 여행일지 파일까지 만들어 와 가기전에 공부했었던 자료들과 그곳에서 받았던 자료들을 파일함에 차곡차곡 모으고 기록하고 있었다.

너무나 배울것이 많은 가족들

찾아가서 여행일지 양식 한장을 얻어왔다.

모아둔 자료들과 그동안의 기억들을 되살려 작성한 일지를 파일함에 넣기 위해 돌아와서 바로 파일을 사고 한글97에서 여행일지 양식을 만들어 주었다.

반복학습겸 수진이가 일지를 작성하고 우진이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유로, 달러, 시간비교, 미술, 역사, 음악, 위치까지 분석하며 적어 내려가는 것이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자료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들에겐 한번은 와볼만한 역사의 현장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매치기와의 전쟁을 방불케 했던 여행이었다.

10년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없는 상태에 때가 낀 문화재들의 후즐그레한 모습들에 매력적인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이든다.

맛없고 짠 스파게티 현지식

형편없는 동양인들에 대한 예우

어딜가나 집시들과 흑인들의 위험한 눈길이 도사리고 있어 긴장의 끊을 늦추기 힘든 시간들 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무엇이 좋은지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있다.

여러 가족들과의 만남이 꽤나 인상적 이었던지 벌써 그립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앞으로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겨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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